
2011년 초여름,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저는 ‘멜로디잔치’라는 잔치와 함께 열리는 작은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틈틈이 다녀온 배낭여행에서 담은 인물사진을 모은 전시였지요. 한창 전시를 준비하던 중 ‘카우치서핑’이라는 여행자를 위한 웹사이트를 통해 쪽지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온 사진가인데, 서울의 사진가를 만나보고 싶어 검색하던 중이었다며, 시간이 된다면 만나서 여행과 사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침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으니 찾아오라는 답장을 보내고는 아득히 잊고 있었지요. 그래서 전시 당일, 낯선 미국인이 저를 찾아왔을 때 조금은 당황했습니다. 그날 그 전시가 열리던 담벼락 앞에서 이야기 나누고 있는 저희의 모습이, 마침 공연 풍경을 찍은 영상에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공연을 하고 있던 ‘신나는섬’과는 꾸준히 서로를 도우며 재미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실 저는 영어를 썩 잘하지 못합니다. 어렵게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느라 버거웠지만, 신기하게도 말이 참 잘 통한다는 느낌이었어요. 막 직장을 그만두고서 사진 작업을 진행하면서 아시아 곳곳을 여행하고 있다는 이 낯선 미국사람이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저는 매주 일요일마다 주말텃밭에 열심이었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텃밭에 갈 계획이니 혹시 함께 갈테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이른 아침 7시쯤부터 출발하곤 했는데요, 너무 이른 시간이니 아마 못 오겠지 생각했는데 일찌감치 약속장소에 도착해있어서 다시 한번 당황했지요. 그리고 긴긴 대화가 하루 종일 이어졌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답답함에 관해, 쭉 관심을 두어온 생태 환경 문제에 관해, 서로의 여행과 사진작업에 관해, 여러 분야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닮아서 반가운 공통점들을, 달라서 신기한 차이점들을 계속해서 발견해나갔습니다.
패트릭이 미국으로 돌아간 후로도 계속 소식을 주고받았고, 몇 달 후 패트릭은 ‘Sociecity’라는 웹진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늦가을, ‘생태교통총회’라는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패트릭이 다시 한국을 찾았습니다. 남는 일정 동안, 텃밭 친구를 통해 알게 된 홍천의 자연농 농부 최성현님을 찾아가 짤막한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그저 간단히 웹진에 소개해보려고 담았던 그 인터뷰가, 저희 두 사람의 삶을 뒤바꾼 전환점이 될 줄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1시간도 채 안 되는 인터뷰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무척이나 깊고 넓었습니다. 겨우내 인터뷰를 번역하고 편집하면서 ‘자연농’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헤쳐나가던 저희는, 이 뜻깊은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맨 처음 ‘한 1년쯤 걸리지 않을까?’ 예상했던 다큐 프로젝트는 총 4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내 뜻깊은 만남들로 가득했던, 알찬 배움과 성장의 시간이었습니다. 저희는 한국과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이어갔고, 이후 패트릭이 ‘Art, Space and Nature’ 석사과정을 밟은 에딘버러에 반 년 넘게 머물면서 쭉 편집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저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작고 조용한 움직임들을 보며 감동했습니다. 옳지 않다고 여기는 기존의 모든 가치들에 맞서며, 가슴으로부터 옳다고 믿는 새로운 가치들을 삶으로 직접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분들로부터 얻은 가르침은 이후 저희 두 사람의 마음 속에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주었습니다.

2015년 9월, 마침내 다큐 ‘자연농(Final Straw)’이 완성되어 상영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한국에서 미국을 거쳐 일본과 스코틀랜드까지, 약 1년에 걸쳐 모두 합쳐 150번 넘는 상영회가 이어졌습니다. 상영회와 함께 자연 예술 워크샵, 텃밭+예술 프로젝트 등의 활동을 통해 ‘자연과 사람이 다시 가까이 이어져야 한다’는 자연농에 담긴 생각을 두루 전했습니다. 이 긴긴 여정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저희가 그동안 꾸준히 귀담아 들어왔고, 다큐를 통해 널리 나누고자 힘써온 그 생각이 이미 곳곳에서 든든히 퍼져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보다 자연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조화롭고 아름다운 삶, 다큐 작업은 마무리되었지만 앞으로도 저희는 이 목표점을 향해 꾸준히 걸어나가려 합니다.

이렇게 지난 날들을 찬찬히 돌이켜보노라면, 6년 전 여름의 첫 만남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집니다.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일들이 자연스레 당연한 것처럼 펼쳐져왔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은 또 어떨지, 또 다시 새 출발점에 선 마음이 두근두근 설렙니다. 저희는 올 가을 조촐한 혼례를 치른 후, 겨울부터 일본 오사카에서 새로운 터전을 꾸릴 계획입니다. ‘The Branch(나뭇가지)’라고 이름붙인 작은 공간과 텃밭에서, 예술, 생태, 자연치유, 지역 공동체… 저희가 닿고픈 여러 목표들을 향해 부지런히 가지를 뻗어보려 합니다. 패트릭은 예술가로서 보다 확고하게 자기의 작업을 펼쳐가고 싶어하고, 손으로 무언가를 가꾸고 만드는 걸 좋아하는 저는 직접 텃밭을 돌보며 ‘허브’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해보려 합니다. 저희의 생활공간 겸 작업공간, 공유공간이 될 ‘The Branch’는 이런 저희의 활동이 펼쳐질 거점이자, 지역주민 및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이 모여 어울릴 쉼터이자,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모이고 퍼져나갈 든든한 중심축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쭉 지켜보며 응원해오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공간 ‘The Branch’의 시작에 힘을 보태주세요. 지금은 오랜 시간 비어 있던 낡고 허름한 집이지만, 아름답고 활기찬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저희 두 사람이 손수 가꾸어가려고 합니다. 다음 링크에서 저희의 프로젝트를 후원해주실 수 있습니다.



